<미디어워치>일본 아사히신문 ‘위안부 보도’에 대한 검증보고서 <6>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21-02-02 19:45:30    조회: 1,023회    댓글: 0

이 정보에 따라 확인한 근거는 일본 국가기본문제연구소(国家基本問題研究所)의 1월 13일자 ‘금주의 직언(今週の直言)’(다카하시 시로(高橋史朗), ‘정보전 승리, 국제홍보가 급선무(情報戦勝利へ国際広報が急務)’)으로 밝혀졌다. 이 직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위안부는 천황의 선물”이라고 적힌 맥그로힐사 교과서에는 해럴드 팀펄리(Harold John Timperley, 중국명 : 전백열(田伯烈)) 편 ‘외국인 목격 중의 일본군 폭행(What War Means : The Japanese Terror in China, 중국어판은 外人目撃中の日軍暴行)’에 실린 사진이 ‘중국인 포로를 처형하는 일본군’으로서 소개되고 있지만, 이 사진은 히가시나카노 슈도(東中野修道), 코바야시 스스무(小林進), 후쿠나가 신지로(福永慎次郎) 지음 ‘난징사건의 증거사진을 검증한다(南京事件「証拠写真」を検証する)’(소우시샤(草思社))에서 “난징에서의 일본군에 의한 처형 사진이 아니다”라고 지적받은 것이다. 많은 구경꾼이 있기에 공개 처형 사진이지만, 당시 일본군 장병의 기록에서도, 난징의 구미인의 일기 등에도, 공개 처형 기록은 일절 나오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점은 구경꾼의 복장이 모순된다는 점이다. 이들은 여름에 가까운 복장을 하고 있지만, 난징 함락은 12월 13일 겨울이었으며 함락된 지 두 달이 지나자 난징은 평온한 생활로 돌아갔고, 일본군은 전투를 위해 거의 난징을 떠났다. 그러니 여름에 가까운 시기에 난징에서 처형이 있을 리 없다. 병사의 신발 그림자 각도에서도 사진의 계절이 겨울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난징사건에서 공개처형 장면으로 알려진 사진. 부자연스러운 점이 많아 난징사건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으로 조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난징사건 관련 사진들 중에서 많은 수가 실제 난징에서 찍힌 사진이 아니라는 점은 난징사건 관련 대학살설을 주장하는 이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 난징사건에서 공개처형 장면으로 알려진 사진. 부자연스러운 점이 많아 난징사건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으로 조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난징사건 관련 사진들 중에서 많은 수가 실제 난징에서 찍힌 사진이 아니라는 점은 난징사건 관련 대학살설을 주장하는 이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2003년 4월 6일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미군과 영국군의 이라크 공격을 놓고 미국 언론이 격렬한 보도전을 벌이는 가운데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3월 31일자 1면에 실린 전방의 사진이 컴퓨터 합성이었음이 밝혀지자 이 신문은 회사규칙에 따라 카메라맨을 해고하고 다음 날 1면에 사죄광고를 게재하고 이 같은 사실을 설명했다.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교과서에는 이 이상의 책임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이런 사진이 교과서에 사용된 것은 중대한 문제이며, 위안부 기술과 마찬가지로 일본 정부로서 정식으로 정정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한 것이다. 

미국역사협회는 학문의 자유에 대한 위협을 내세워 항의하고 있지만 학문의 자유는 비판받지 않을 권리나 학문의 권위 아래 일체의 비판을 허용하지 않을 권리가 아니다. 일본 정부는 미국 정부를 경유하는 외교적 압력을 가하지 않고 있으며 맥그로힐사의 교과서를 검열할 권력도 없다. 학문의 자유를 잘못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한국 언론의 인터넷 일본어판에 대한 오해는 두 가지가 있다. 우선 다카하시 시로 교수는 2004년 모임에서 탈퇴했으며 특정 이익단체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출판사나 역사학자에게 연구결과를 바꾸도록 압박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비판은 맞지 않는다. 또 다카하시 시로 씨가 뉴욕 총영사관을 방문한 것은 일본 정부의 교과서 정정 신청 이후이며 정정 과정에서 모임 측이 “실지조사를 실시해 일본 정부에 보고했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다. 다카하시 시로 씨의 문제제기와 일본 정부의 정정 신청의 시계열을 왜곡, 다카하시 시로 씨가 사이타마(埼玉) 현 교육위원 취임 이전에 ‘모임’을 퇴임한 것을 확인하지 않고, “일본 극우 단체와 정부가 미국 교과서의 일본군 위안부의 기술 내용을 왜곡하기 위한 조직적 움직임에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라는 터무니없는 오보에 휘둘려 앞서 말한 공동성명이 나오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재미일본인 고교생에 따르면 위안부 문제와 ‘난징대학살’을 합친 수업이 이뤄지고 30분 이상 동안 90세 이상으로 보이는 백발의 전 일본군 등이 계속 말하면서, “우리들은 주민들을 죽이기 전에 여성이라면 대여섯 사람의 병사가 반드시 강간을 하고 죽였다. 전쟁 중이라 이런 일을 하고도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는 등의 증언을 하는 동영상(교사는 그 낡은 비디오테이프를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다)을 보여줘 심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동영상에는 강간당한 후의 여성의 사진 영상도 포함되어 있었다. 

반 아이들은 “오, 하느님! 이 지독한 짓을 했어! 일본 군인은 야만!”이라고 저마다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정면으로 돌릴 수 없어 수업이 끝날 때까지 계속 고개를 숙였다. 자기 조국이 모진 소리를 듣는 것은 일본인인 자신이 책망을 받는 것 같아 괴로웠다고 한다. 

이 교사는 “특히 한국 여성은 일본군이 억지로 성노예로 삼았다. 일본은 한국 여성에게 특히 심했다. 그런 것도 있고 그래서 일본은 아시아 중에서 미움을 받고 있다”, “난징대학살보다 조선인 위안부에 대한 강간이 심했다”고 강조했다. 한국인 급우가 “부모로부터 일본인과 이야기하지 말라고 들었다”라며, 떠들어댔다. 해당 챕터의 학습이 끝날 때까지 이들 반 친구와 일절 눈을 맞추지 못했다고 한다. 

글렌데일 시에 위안부 기림비·상이 설치됐을 때 한국인 친구에게서 감상을 요구받았지만 “비문에 적힌 내용을 반박하기 위해서 필요한 영문 자료가 수중에 없어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비와 상을 견학하기 위해 필드트립(소풍)에 끌려간 일본인 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고교생의 어머니가 “(교과서에 있는) 위안부가 천황의 선물”라는 대목에 대해서, “이 구절은 특히 심하다. 그럴리가 없지?”라고 하면, “그 글을 반에서 읽었어. 얼마나 굴욕적인 기분이 들었는지, 상상이 되지?”라고 대답하였고, 이어 다음과 같이 계속하였다. 

불만을 이야기해도 소용없다. 불만이 있으면 그것을 바로잡는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역사 교과서가 바뀐다면 지금 초등학생인 지인의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될 무렵에는 이런 안 좋은 일을 당하지 않아도 될지도 모른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일본이 열심히 해줬으면 좋겠다. 정치인은 국토와 국민을 지키는 것이 일이라고 들었는데, 이 교과서 문제도 일본 국민을 지키는 일이잖아?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우리들은 일본인인 걸. 우선은 좀 더 영어로 발신해야겠다. 일본 내에서만 떠들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니까. 겨우 여기에 와서, 간신히 영어로도 발신하게 된 것은, 늦지만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 그렇다 치더라도, 이 교과서의 내용이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한국이나 중국은 매년 일본의 교과서 내용에 불평하는데 왜 일본은 다른 나라의 교과서에 대해 조사하지 않는 것일까? 앞서 본 한국·중국·일본 대학생 토론회에서 중국에서는 천안문 사태가 교과서에 실려 있지 않다고 했다. 한국 교과서에는 베트남전이 없고, 정책 대실패로 기아상태가 된 것도 교과서에는 가뭄 때문이라고 한다고 했다. 이 대학생들은 자국을 떠나 타국에서 공부하기 때문에 그런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자국 내 학생들은 국가에 불리한 사실은 교과서에 실리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그런데도 반일교육만은 확실히 하니까, 순전히 일본이 싫어져 버리는 것이다 ...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우리 세대가, 전시중의 일로 아직도 불쾌한 일을 당하는 것은 가엾다고 생각한다.

 

고교생의 어머니에 따르면, 일본인 학생들에게 한국인들이 와서, “독도는 한국의 것이다!”라고 소리를 지르고 가는 일이 몇 번 있었고, 그들은 아연실색해서 어떻게 돌려주면 좋을지 하는 생각도 나지 않고, 그저 싫은 감정만 남았다고 한다. 대다수 고교생은 수업 내용 등을 부모에게 말하지 않는다. 적어도 일본어 보습학교에서…… 하고 생각하며 확인했지만, 보습학교의 역사교과서가 일본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도쿄쇼세키(東京書籍)의 것이었다. 적어도 일본어 보습학교에서라도 재미동포 아이들이 일본이라는 조국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교과서를 제공해 주었으면 한다. 재미일본인 고교생이 역사 날조의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꼭 알아주시고, 일본국으로서 일본의 명예를 되찾는 노력을 하여 결과를 도출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소리를 꼭 아베 총리또 시모무라 문부과학 대신에 전하여 달라는 것이었다.(다카하시 시로(高橋史朗), ‘‘위안부’로 여기까지 온 미국의 일본인 차별(『慰安婦』でここまできたアメリカの日本人差別)’, ‘세이론(正論)’ 2015년 3월호 참조). 

이 맥그로힐사의 세계사 교과서의 위안부 기술의 베이스에는 전술한 미국 하원 결의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 결의를 추진한 마이크 혼다 의원을 전면적으로 지원했던 중국 측 ‘항일연합회’의 로비 활동이나, ‘일본해’ 표기를 ‘동해’ 병기로 고치는 로비 활동을 정력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VANK를 중심으로 한 한국 측의 압박이 전후 70년을 맞아 격화하고 있고, 중국, 한국의 프로파간다가 미국을 끌어들이고 있다. 일본의 논리 있는 주장이나 일본 정부의 정정 건의를 전혀 외면한 채 중국과 한국의 반일 프로파간다에 동조하는 논조가 미국 언론에 만연해 있다. 

그 근저에 있는 것이 아사히신문의 ‘92년 1월 강제연행 프로파간다’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사히신문이 더 빨리 국제 사회에 이 선전이 사실이 아닌 것을 홍보하였다면, 이러한 기림비·상이나 미국의 역사 교과서의 편향 기술과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대일 비난 결의로의 확대를 억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집단 괴롭힘의 구체적 사례(いじめの具体的事例)

게다가 해외재류 일본인 자녀에 대한 집단따돌림(이지메)이 6, 7세부터 고교생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확대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 뉴저지 주에서만 10건 이상이 보고되고 있어 ‘도시 전설에 지나지 않는다’ 등으로 말할 수 없는 실태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현재 재적생 자녀에게 피해가 갈까봐 나서지 못하는 당사자들의 속은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다. 

구체적 사례의 일부를 소개한다. ① 역사 수업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배울 무렵 학교에서 중국계 학생 몇 명으로부터 집요한 괴롭힘을 당했다. 바인더에 추잡한 말을 낙서해놓거나, 여럿이 합세하여 일본인임을 비난하는 말을 하거나 했다. ② 2~3회 구두로 여러 가지 헤이트 스피치(I hate Jap! 등)가 있었지만 급기야 4번째로 주먹을 휘둘렀다.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때렸다. 게다가 “다음엔 죽이겠다”고 했다. 학교장이 양측의 의견을 듣고 논의했지만 며칠간의 정학 처분만 하고 사과의 말도 없었다. ③ 한국 남자 아이가 아이의 얼굴에 침을 뱉기 시작했다. 아이가 놀라서 도망가자 재미 삼아 쫓아와 몇 번이나 침을 뱉었다. 괴롭힘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해, 학교의 선생님(중국계나 한국계)과 상담했지만, “학교 바깥의 사건이기 때문에 대처할 수 없다”고 거절당했다. 부지에 있는 수영장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심술을 부려 자물쇠를 채워 쫓겨난 적도 있다. 

해외 재류 일본인이 개별 원고가 된 아사히신문 ‘위안부’ 오보 소송에서 ‘일본인의 명예와 신용’이 침해된 구체적인 피해 사례가 법정에서 차례로 증언된다. 

캐나다 국립 인권 박물관의 위안부 전시에 대한 영향(カナダ国立人権博物館の慰安婦展示への影響)

아사히신문에 의한 위안부 오보의 영향은 캐나다에도 미치고 있다. 캐나다 거주 일본인 번역가 마리노후 토시에(マリノフ利江) 씨에 따르면 지난해 9월에 캐나다 위니펙(Winnipeg) 시 국립인권박물관이 개관했는데, 재작년에 필리핀에서 일본의 ‘종군위안부’였다고 밝힌 여성과 그녀의 상담사를 초청하여 인터뷰와 강연회를 캐나다 각지에서 개최했다. 이 상담사는 강연에서 1992년 1월 11일자 아사히신문이 보도한 내용을 언급하며 아사히신문 보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마리노후 씨는 그 아사히의 위안부 보도가 오보였음이 밝혀지면서 이 박물관에 전시된 일본군에 의한 필리핀 여성의 강제연행 전시회에 대한 항의 행동을 하고, 캐나다 총리에게도 편지를 내고 항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마리노후 토시에(マリノフ利江), 다카하시 시로(高橋史朗) 대담, ‘국제오해라는 ‘국난’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国際誤解という『国難』といかに闘うのか)‘, ‘치치(致知)’ 2015년 3월호 참조). 

토론토알파(Toronto ALPHA, Toronto Association for Learning and Preserving the History of World War II in Asia)의 포스터. 이 단체는 난징사건 문제와 위안부 문제를 주력으로 하여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시비하고 있다.
▲ 토론토알파(Toronto ALPHA, Toronto Association for Learning and Preserving the History of World War II in Asia)의 포스터. 이 단체는 난징사건 문제와 위안부 문제를 주력으로 하여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시비하고 있다.


이 위안부 전시와 역사박물관 건설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캐나다의 인권단체 토론토알파(Toronto ALPHA, Toronto Association for Learning and Preserving the History of World War II in Asia)는 토론토 가톨릭 교육위원회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 중 아시아에서 일어난 일본군 위안부 등의 안타깝고 악랄한 행위를 가르치고 고교 과정에서 배울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의 양해 각서를 체결했다. 토론토알파는 매년 캐나다 교사를 스터디 투어 형식으로 중국 난징대학살기념관이나 한국 나눔의 집 등에 보내오다 2015년부터는 고교생을 이 스터디 투어에 포함시키려 하고 있다. 



첨부자료(添付資料)


캐나다 국립인권박물관의 위안부 전시 내용(カナダ国立人権博物館の慰安婦展示内容)

 

[대일본제국(大日本帝国)]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전시 중에 걸쳐 일본 제국군은 5만에서 20만 명에 이르는 여성과 소녀에게 성노예가 될 것을 강요했다. 그중에는 11세의 어린 소녀도 있었다. 군은 이 사로잡힌 여성을 ‘위안부’라 칭했고, 진짜 목적과 박해도 숨겼다. 위안부는 일본군에게 성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그녀들의 문화와 언어에서 단절되어 전장의 최전선에서 정기적으로 능욕당하고 폭력을 당하고 있었다. 

 

[난징대학살(南京大虐殺)]

일제에 의한 난징침략의 와중에 일본군들에 의한 끊임없는 강간이 행해졌다. 흩어져 있는 매춘소는 부실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래서 군은 규모가 크고 보다 공적 성격이 강한 위안소 제도를 만들었다. 

 

[죄과(罪科)]

일본군은 수천의 여성과 소녀를 성노예로 만들기 위해 압송했다. 

 

[교과서에 의한 부정(教科書による否定)] 

오랫동안 국가주의자들은 일본의 전쟁 당시 기록을 왜곡해 여성을 성노예로 몰아넣은 사실을 부인했다. 이 2005년의 화상(画像)에서는 역사 교과서의 위안부 제도에 대한 언급이 미흡하다고 반 검열 조직의 대표인 다와라 요시후미(俵義文)가 지적하고 있다. 

 

[최초의 사진(最初の写真)]

이 사진이 발견된 1962년, 언론인 센다 가코(千田夏光)는 위안부 제도에 관한 조사와 집필의 제1인자가 되었다. 

 

[국제적 부정(国際的な否定)] 

증거 불충분한 일본의 위안부 제도에 대한 주장이 나오자 일본 지도자는 2007년 워싱턴포스트에 의견 광고를 냈다. 그 광고에는 전 세계를 향해 일본이 결코 여성을 성노예로 만들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자의적인 5가지 역사적 주장이 실려 있었다. 

 


 

첨부자료(添付資料)


전국 각지의 위안부 비문(全米各地の慰安婦碑文)

 

① 뉴저지 주 팰리세이즈 파크

“1930년대~1945년 일본 제국군에 의해 유괴된 20만 명 이상의 부녀자를 기립니다. 그녀들은 ‘위안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들은 인권 침해와 위법 행위를 참고 견디었습니다. 인간성에 반한 범죄의 공포를 결코 잊지 않도록 해십시오.”(2010년 10월 23일)

 

② 뉴욕 주 아이젠하워

“‘위안부’. 1930년대~1945년, ‘위안부’로 세계에 알려진, 일본제국 군에 의해 성노예의 용도를 위해 유괴된 20만 명 이상의 부녀자를 기리며. 그들이 당한 인간성을 저버린 가증스러운 범죄가 잊혀지면 안 됩니다. 그들이 견뎌낸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는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2012년 6월 20일)

 

③ 캘리포니아 주 가든글로브

“‘강제된 성노예’ 1930년대~1945년, ‘강제된 성노예’로 세계에 알려진, 일제에 의해 성노예의 용도로 유괴된 20만 명 이상의 부녀자를 추모하며. 그들이 당한, 인간성을 저버린 가증스러운 범죄가 잊혀지면 안 됩니다. 그들이 견뎌낸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침해는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2012년 12월 1일)

 

④ 뉴저지 주 핫켄색

“제2차 세계대전 중 그리고 그 이전부터 일본제국 군에 의해 성노예 상태에 있도록 강요당한 한국, 중국, 대만, 필리핀, 네덜란드, 인도네시아의 수십만 부녀자를 기리며”(2013년 5월 8일)

 

⑤ 캘리포니아 주 글렌데일

“‘나는 일본군의 성노예였습니다.’ 헝클어진 머리는 일본 제국군에 의해 강제로 집에서 끌려가는 소녀를 상징합니다. 주먹은 정의 회복을 위한 굳은 의지를 보여줍니다. 맨발에 발뒤꿈치가 닿지 않은 다리는 차갑고 몰이해한 세계에 의해 계속 버려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소녀의 어깨에 앉은 새는 우리와 죽은 희생자들의 유대감을 상징합니다. 비어있는 의자는 정의를 아직 증언하지 못한 고령의 나이로 죽음을 맞고 있는 생존자를 상징합니다. 소녀의 그림자는 그 소녀와 늙은 할머니로, 말없이 소비된 시간의 경과를 상징합니다. 그림자 속의 나비는 희생자들이 어느 날 그들의 사과를 받고 되살아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평화기념비. “1932년부터 1945년 사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성노예 상태가 된 20만 명 이상의 한국, 중국, 대만, 일본, 필리핀,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동티모르, 인도네시아의 고향에서 이송된 아시아와 네덜란드 여성들을 기립니다. 그리고 일본 정부가 이들 범죄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받아들이기를 권고하는 2007년 7월 30일의 합중국 의회의 하원 결의 121호의 통과와 2012년 7월 30일의 글렌데일 시에 의한 ‘위안부의 날’의 선언을 축하합니다. 이 부당한 인권침해가 결코 반복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거짓 없는 소망입니다.”(2013년 7월 30일)

 

⑥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제2차 세계대전 중 인신매매의 희생자로서 기본적 권리와 존엄이 제거된 부녀자의 명예를 위하여. 20만 명 이상의 한국·중국·대만·필리핀·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네덜란드·동 티모르의 부녀자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제에 의해서 성적 노예 상태 또는 완곡하게 부르면 ‘위안부’가 되기를 강요받았다. 우리는 그녀들의 아픔과 고통을 존중하며 기본적 인권의 결여를 애도한다. 이들 ‘위안부’가 그들의 의사에 반하여 넘겨진 범죄로부터의 영원한 평화와 정의를 찾으십시오. 이러한 부녀자의 기억이 여성 권리 보호의 중요성의 기억과 기본적 인권의 확증으로서 유익하기를”

이 비문의 이면. “합중국 의회는 2007년 7월 30일 하원 121호 결의안에서 193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내내 그 식민지와 아시아와 태평양의 섬들의 전시 점령 동안 ‘위안부’로서 세계에 알려진 젊은 여성을 성노예 상태에 둔 일제의 강제에 대해서, 일본 정부가 공식 인정, 사죄하고, 그리고 명백하게 모호하지 않은 태도로 역사적 책임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 하원의원 마이크 혼다(CA15)(2007년 1월 31일 제출)”(2014년 5월 30일)

 

⑦ 뉴저지 주 유니언시티

“제2차 세계대전 중 그리고 그 이전부터 일본제국 군에 의해 성노예 상태가 되도록 강제된 한국·중국·대만·필리핀·네덜란드·인도네시아의 수십만 부녀자를 기리며”(2014년 8월 4일)

 

⑧ 미시간 주 사우스필드

“어깨에 참새가 앉아 있는 이 젊은 한국 여성은 한 노인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일본땅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군이 저지른 무서운 성노예 범죄인 ‘위안부’ 문제가 미결인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전 세계 여성의 인권, 그리고 인류의 미래를 상징합니다.”(2014년 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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